말은 참으로 신비스럽고 경이롭다. 그 속에는 질서와 자유로움이 어우러져 우리가 평소에 쓰면서도 새롭게 느껴질 때가 많다. 이러한 언어의 신비는 특히 색깔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두드러진다.
흔히 ‘빨갛다’ ‘까맣다’는 사물의 외양을 묘사하는 데 쓰인다. 잘 익은 빨간 사과나 숯처럼 까만 연기를 떠올릴 수 있다. 우리말은 이처럼 대상을 설명하는 말이 대상을 꾸며주는 형태로 변하며 더욱 풍부해진다. 가령 ‘사과가 빨갛다’가 ‘빨간 사과’로, ‘연기가 까맣다’가 ‘까만 연기’가 되는 식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규칙이 언제나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새빨간 거짓말’을 ‘거짓말이 새빨갛다’로 바꾸면 어색하거나 틀린 문장이 된다. 이는 ‘새빨간’이 거짓말의 실제 색깔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 거짓말이 터무니없다는 점을 강조하는 비유적 의미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언어에는 반복적 사용과 문화적 맥락을 통해 특정 형태로 굳어진 관용 표현이 많다. ‘새빨간 거짓말’은 이미 하나의 의미 단위로 자리 잡아 일반적인 형용사-명사 결합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는 색채어가 본래의 색깔을 넘어 때로는 특정한 형태로만 깊은 의미를 전달하는 언어적 현상을 보여준다.
색채어가 비유적으로 확장되는 데에는 우리 문화와 심리가 깊이 작용한다. 빨강은 불의 강렬함, 검정은 어둠과 망각을 상징하는 등 오방색 전통이 우리말 곳곳에 녹아 있다. 이것은 단순히 시각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의 경험과 감정, 심리 상태까지 표현하는 언어적 장치가 된다. 얼굴이 ‘빨개졌다’고 하면 부끄러움이나 분노를, ‘하얀 마음’은 순수함을, ‘하얗게 질렸다’는 극도의 놀람이나 두려움을, ‘검은 속’은 악한 마음을 떠올리게 한다.
이렇듯 색채어는 단순한 꾸밈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인지하고 해석하며 감정을 교류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매개체다. 색은 눈에 보이는 현상이지만 우리말에서는 마음과 삶을 비추는 창이 되어 때로는 말보다 더 깊은 감정을 진솔하게 전하기도 한다.
경기 화성시의 리튬 배터리 제조업체인 주식회사 아리셀 공장에서 폭발 및 화재 사고가 발생한 지 1년이 되었다. 이 사고로 23명의 작업자가 목숨을 잃고, 9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고 원인은 단순하지 않다.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생산을 추진했고, 대형 폭발 발생 전 리튬 배터리가 폭발하는 사고가 있었음에도 조치 없이 작업이 재개됐다. 아리셀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위험성 평가 심사를 거쳐 우수사업장으로 선정되기도 했지만 실상은 위험 요소들이 방치된 곳이었다. 당시 현장에는 금속 화재 전용 소화기도, 유증기를 막을 환기시설도 없었다. 비상구 문은 정규직만 열 수 있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탈출할 수 없었다.
피해자들은 불법 파견과 도급 형태로 고용된 이주노동자였다. 이들은 기본적인 안전 교육도 받지 못했다. 대피로 안내조차 받지 못한 상태로 일했다. 외국국적동포 체류자격을 가진 이들이 다수였다. 단순노무직에서 일할 수 없는 자격이지만, 피해자들은 공장에서 리튬 배터리를 포장·운반하는 업무에 투입됐다. 이는 이후에 사업주가 보상액을 줄이기 위한 핑계로 사용됐다. 이주노동자에게 체류자격에 부합하지 않는 일을 지시한 것은 사용자인데, 그 일을 했다는 이유로 산업재해 사망에 따른 보상금을 깎으려 한 것이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했을 때, 그 보상은 국민의 경우보다 현저히 낮을 수 있다. 체류자격이 만료하는 시점 이후부터는 본국으로 돌아갔을 것이라 상정해 해당 국가 평균 임금을 기준으로 일실수익을 낮게 산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중 많은 이주노동자는 체류를 연장하고, 영주권이나 귀화를 통해 한국 사회 일원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충분한 사람들이었다. 법과 제도는 그들의 ‘삶의 지속 가능성’을 철저히 배제한 채 죽음의 가치를 평가한다.
이러한 죽음이 통계로조차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 더 참담하다. 사망 이주노동자 통계나, 죽음 원인 분석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이주노동자 사망에 대한 원인 분석 및 지원 체계 구축을 위한 연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출입국 사무소에 신고된 이주노동자 사망자는 3340명에 이르지만 기초 신상정보가 기록된 이는 214명에 불과하다. 3126명의 죽음은 그 원인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한창 일할 나이에, 건강함을 신체검사로 확인하고 한국에 온 이들이 왜 이렇게 많이 죽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경기도가 참사 1주기를 맞아 낸 백서 ‘눈물까지 통역해 달라’는 참사 배경에 비정규직·이주노동에 대한 구조적 차별·혐오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인권과 노동자 권리가 실현되지 못한 이유는 결국, 이들의 목숨을 가벼운 것으로 여기고 이를 보호하지 않아도 문제 되지 않는 시스템을 만들어 온 한국 사회의 정책 결정·집행 구조와 사회적 인식에 존재한다.
박순관 아리셀 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파견법 위반 등으로 형사 기소됐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 사업주가 구속기소 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2025년 2월 보석으로 석방돼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재판이 법적 책임 규명을 넘어, 한국 사회가 사업주의 의무와 노동자의 권리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에 물음을 던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지난해 8월 에어컨 설치 작업 중 열사병으로 숨진 청년노동자 사건에 대해 고용노동부의 재수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민주노총광주본부와 광주전남노동안전보건지킴이 등은 1일 오전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폭염 사망사고에 대해 철저하게 재조사하라”고 요구했다.
삼성전자 에어컨 설치 하청업체 소속이었던 양준혁씨(당시 27세)는 지난해 8월13일 폭염 속에서 전남 장성의 한 중학교 급식실에 시스템 에어컨을 설치하다 쓰러졌다. 입사 이틀 만이었다.
양씨가 열사병 증상을 보이며 쓰러졌는데도 회사 관계자들은 1시간가량 뒤 119에 신고했고, 양씨는 결국 숨졌다.
광주노동청은 해당 사건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 등으로 열 달 넘게 수사하다 최근 검찰의 지휘를 통해 ‘무혐의’ 처분했다.
이들 단체는 “폭염 속에 사망한 청년노동자의 사건에 대해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고 회사에 면죄부를 줬다”면서 “사고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민주노동당 광주시당도 이날 성명을 내고 “폭염휴식권, 현장에서 무용지물인 작업중지권, 옥내 사업장 냉방시설 의무화 등 노동자 생명을 지키기 위한 과제들을 시급히 처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광주청년유니온도 성명에서 “2024년 기준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 산재 승인은 147건이며 사망사고는 22건”이라면서 “실효성 있는 구체적 재발 방지 대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