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자료 어릴 때 잃어버린 딸이 해외에 입양됐다는 사실을 44년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된 가족들이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국가의 총체적 불법과 직무유기로 수십년간 생이별의 고통을 겪었다”고 했다. 1970~1980년대 정부가 민간단체를 통해 해외로 입양시킨 아동이 2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묻는 첫 소송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8부(재판장 김도균)는 24일 신경하씨의 어머니 한태순씨와 신씨의 동생 2명 등이 국가와 입양기관 등을 상대로 낸 6억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첫 변론기일을 열었다. 1975년 만 5세였던 신씨는 충북 청주시에서 실종됐다. 실종 두 달 만에 입양기관에 인계됐고, 7개월 뒤 미국으로 보내졌다.
한씨는 딸의 실종 다음날 바로 경찰에 신고했으나, 신씨가 해외로 입양된 사실은 전혀 몰랐다. 가족들은 전단 배포,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수십년간 행방을 찾아헤맸다. 한씨는 2019년 10월에야 한인들의 DNA로 친부모를 찾아주는 비영리단체 ‘325캄라’를 통해 신씨와 만나면서 비로소 딸의 해외 입양 사실을 알게 됐다.
가족들은 국가의 책임을 묻기 위해 지난해 10월 소송을 제기했다. 한씨 측 황준협 변호사는 이날 재판에서 “피고 대한민국 소속 공무원들은 수사 절차를 위반하고, 미아 신고 접수 시 수배 등 적극적으로 행동할 의무가 있었는데도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정상적 프로세스가 작동했다면 충분히 찾을 수 있었는데도 그러지 않아 비극적 결과가 생겼다”고 했다. 이들은 당시 입양을 진행한 홀트아동복지회에 대해 “미아라는 사실을 알았을 수 있는데도 연고자를 찾으려는 노력 없이 입양을 추진했다”고 했다.
국가 측 대리인은 “원고들은 국가가 옛 아동복리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 법은 시장 등 지자체장에 대해 규율하는 법 조항”이라며 “국가가 책임질 근거가 부족하다”고 했다. 실종된 신씨에게 임의로 생년월일과 이름을 부여하고 홀트에 인계했던 충북 제천영아원 관계자는 “이 사건 관련 내용을 확인할 당사자들 기억은 물론 기록도 아무것이 없어 실체를 알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사실조회 결과 등을 확인해 추후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제주항공 참사로 인해 부모를 잃고 빚을 떠안게 될 위기에 놓인 미성년자들이 대한법률구조공단의 도움을 받아 위기에서 벗어났다.
23일 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12월29일 무안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어머니를 잃은 A씨와 여중생인 B씨 남매는 직계비속으로서 1순위 상속인이 됐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와 함께 생활해온 A씨 남매는 숨진 어머니의 재산을 상속하며 상속 채무까지 부담하게 됐다. 당시 어머니는 주거지 보증금과 예금 등 6000만원을 남겼으나, 대출금 등 약 1억원 가량의 빚도 있었다. 채무가 연체된 이력은 없었다
공단은 A씨 남매 대리해 광주가정법원에 ‘상속 한정승인’을 신청하고 미성년인 B양의 후견인으로 외할머니인 외조모를 선임해 줄 것을 청구했다. 남매가 단순히 상속을 포기하는 것보다 외할머니 등 향후 후순위 상속인에게 채무가 전가되지 않도록 한 것이다.
상속 한정승인은 상속인이 취득하게 될 상속 재산 내에서 피상속인의 채무를 갚는 것을 조건으로 상속을 승인하는 것이다. 상속채무가 상속재산을 초과한다는 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해야 한다.
법원은 한정승인 신청을 받아들이고 남매의 외조모를 B양 미성년후견인으로 지정하는 결정을 했다.
이번 사건을 담당한 박왕규 변호사는 “갑작스러운 항공 재해로 어머니를 잃고 채무까지 상속받게 된 유족에게 신속하고 실질적인 법률지원을 제공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공단은 제주항공 참사로 단독 친권자였던 아버지가 사망한 후 수천만원의 빚을 떠안게 된 중학생 C양도 대리했다. 이 과정에서 친권자 지정 심판을 통해 C양의 친오빠를 후견인으로 지정하는 결과를 끌어냈다.
친권자 지정 심판은 이혼이나 혼외자 신분, 친권자가 사망하는 등의 사유로 친권자 변경이 필요하거나 친권자 공백이 생긴 미성년자에 대해 법원에 이를 지정 또는 변경해 달라고 청구하는 것이다.
공단 관계자는 “항공기 사고, 산불, 화재 등 각종 재난 상황에서 긴급 법률지원을 신속히 제공하고 있다”며 “맞춤형 지원체계를 더욱 강화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