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테크 신청 이재명 정부에서 가장 주목받는 경제·산업 정책은 단연 인공지능(AI) 분야다. AI 세계 3대 강국 진입을 목표로 정부와 민간 투자를 확대하고 AI 국가 인재를 양성하며, 국가 AI 데이터 집적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확대하겠다는 내용이 이 대통령의 핵심 경제 공약이다. 그리고 100조원이라는 초대형 재정 규모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제 정책 우선순위와 재정 규모가 독보적인 AI 정책의 첫 단추를 어디서부터 채울지에 따라 그 방향이 결정될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큰 비중의 AI 정책을 공공과 민간이 어떻게 분담해 추진할지가 아직 모호하다는 점이다. 이 와중에 ‘관 주도’가 아니라 민간 중심의 AI 정책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규제 완화, 세제 혜택, 국민펀드 조성, 전력 공급 지원 등 사기업 주도의 AI 혁신을 뒷받침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낯익은 서사이지만, 그래서인지 대통령실 AI수석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 빅테크 출신을 지명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 AI 산업은 사실 규제 자체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철저히 민간 주도로 진행돼왔다. 그 결과는 유감스럽게도 글로벌 AI 경쟁에서 밀리는 처지가 된 것이다. 바로 여기에 새 정부가 국가적으로 강력한 AI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게 된 배경이 있다.
상황 맥락만 보면, 정부가 안정적인 디지털 인프라 조성과 AI 산업에 대한 장기적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시장 구도를 바꿔야 할 시점이 됐다. 그래서 대규모 자본과 인프라를 동원해 군비 경쟁식으로 치닫는 글로벌 AI 시장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특히 최근 진화하는 AI는, 과거와 달리 경제의 모든 부문에 영향을 미칠 범용 기술이 분명하면서도 불확실성이 아주 높다는 특징이 있다. 예를 들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다론 아제모을루는 AI가 연간 생산성을 고작 0.07% 정도 높일 것으로 보지만, 필리프 아기옹은 1.3%를 예상할 정도로 경제성장 기여에 대한 기대치 차이가 크다. 더욱이 AI 기술의 응용은 엄청난 가치를 창출할 수도 있지만 심각한 해를 끼칠 수도 있을 만큼 충격의 방향을 가늠하기 어렵다.
바로 이런 이유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AI 대부 제프리 힌턴은, 지금의 AI 기술을 ‘핵분열 물질’에 빗대면서 정부가 강력한 윤리적 법규를 도입하는 등 확실한 안전 대책을 세우는 책임을 맡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AI 업계의 대모로 통하는 페이페이 리 역시 AI 개발 방향이 소수 빅테크 목소리에 좌우되는 현실을 우려하며, 정책 입안자들이 책임감 있는 AI를 개발하는 데 공공 부문이 중요한 리더십을 수행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규모 자본과 인프라를 요구하면서도 경제적 불확실성이 매우 높고 사회와 환경에 미칠 영향도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기업이 주도권을 쥐고 정부는 재정적·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전통적인 산업 정책 공식이 AI 분야에는 통할 수 없다는 말이다.
산업 혁신에서 공공의 역할을 강조해온 경제학자 마리아나 마추카토 역시 AI 개발을 구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메타 등 극소수 글로벌 빅테크가 좌우하는 상황에 대해 심각히 우려한다.
그는 AI가 식량 생산 개선부터 자연재해에 대한 복원력 강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개선하는 등 사회 전체에 엄청난 혜택을 가져다줄 수 있지만, 정부가 소극적인 방관자로 남는다면 그 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하면서 “AI는 잘 고려된 공공 전략의 맥락에서 개발되고 배포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지러울 정도의 현재 AI 발전 속도를 고려할 때, AI 기술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지금 당장 개입해야 할 시점이다. 정부가 기업이 작거나 필요로 한다는 이유로 기업에 돈을 쥐여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 유형의 조직들이 각기 다른 해법을 들고 모여들게끔 정책 구조를 짜라는 마추카토의 조언은 이재명 정부의 AI 정책에도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한다.
무게감이 가장 큰 정부의 AI 정책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 국민들은 기대와 우려의 마음을 동시에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정부의 AI 정책 추진의 결과 소수 AI 빅테크의 거대한 수익과 주가의 고공행진으로 끝나지 않고, 사회구성원들에게도 다양한 혜택을 주고 기후와 생태환경에도 부담을 최소화하는 AI 산업이 될 수 있도록 무겁고 신중한 첫발을 떼기 바란다.
“요즘 날씨가 우리 당 상황 같다. 숨이 턱 막히고 앞이 안 보인다(A 재선 의원).”
국민의힘이 22일 6·3 대선에서 패배한 지 3주 가까이 흘렀음에도 당 쇄신 방향을 결정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당 ‘투톱’인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과 송언석 원내대표가 쇄신안을 두고 엇박자를 내고 있다. 초·재선과 중진, 친한동훈(친한)계와 친윤석열(친윤)계 구도로 의견이 갈려 논의가 진전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김용태 비대위원장은 오는 30일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자신이 내놓은 5대 개혁안 추진에 의지를 보인다. 그는 전날 제주 4·3평화공원 참배 후 국민의힘 제주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국민의힘이 과거를 책임지고 반성한다는 의미에서 (5대 개혁안 중) 탄핵 반대 당론만큼은 무효화해야 된다”며 “당원 여론조사에서 동의를 받아 추진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유정복 인천시장과 만찬을 한 뒤 “당원 여론조사라든지 오늘과 같이 각 지역 시·도지사들의 좋은 말씀들을 원내대표께 전달해서 개혁 의지를 관철해 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번주 전국을 순회하며 당원들의 의견을 들을 예정이다. 임기 만료까지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만큼 당원들에게 직접 개혁안을 설명하며 추진 동력을 확보하고 친윤계, 중진 의원들을 압박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반면 송 원내대표는 탄핵 당론 무효화 등 김 위원장 개혁안에 미온적이다. 전 당원 여론조사에도 부정적 태도를 보인다. 송 원내대표는 원내 혁신위원회 출범을 대안으로 제시하며 혁신위가 개혁안을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원들 의견도 하나로 모이지 않고 있다. 대선 이후 수차례 의원총회가 열려 쇄신안이 논의됐지만 갑론을박만 이어졌다. 친윤계, 중진 의원들은 임기도 얼마 남지 않았고 임명직에 불과한 김 위원장이 개혁안을 추진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주장한다. 비대위원들이 사퇴한 상황에서 개혁안을 의결할 기구도 없다고 본다.
반면 친한계, 초·재선 사이에서는 김 위원장 개혁안을 큰 틀에서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송 원내대표가 제시한 혁신위 출범에는 회의적 입장이다. 대선 패배 원인인 12·3 불법계엄 옹호와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에 앞장서온 친윤계, 중진이 원내 주류인데 원내대표가 구성한 혁신위가 쇄신을 이끌 수 있겠느냐는 주장이다. “대선 패배한 마당에 개혁안에 대한 절차나 따지는 모습이 참 한가해 보인다(B 초선 의원)” “중진들에게 위기의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C 재선 의원)” 등 비판도 나온다.
이 때문에 쇄신 논의가 공전하며 한동안 내홍만 증폭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새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가 8~9월 개최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대선 패배 원인과 당 개혁 방안을 놓고 계파간 주도권 싸움이 심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