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가 잔소리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정말로 걱정되는 것이 많아서 그래요.”
지난 20일 중국 지린성 옌볜대 2025학년도 졸업식. 주방에서 입는 흰색 조리복과 위생모자 차림의 중년 여성이 연단에 섰다. ‘식당 이모님’이라 불리는 옌볜대 구내식당 노동자 류샤오메이(사진)다. 옌볜대는 이날 졸업식 축사를 유명인사 대신 류씨에게 맡겼다. 류씨는 연설을 이어갔다. “배달음식은 편리하지만 자기가 직접 만들어 먹는 것보다는 건강에 좋지 않아요. 밤새 야근한다고 라면만 먹으면 안 돼요. 억울한 일 있어도 혼자 끙끙 앓지 말아요. 업무 스트레스가 심해도 잊지 마세요. 밥은 잘 먹어야 해요.”
최근 옌볜대가 류씨의 연설을 소셜미디어에 공개한 이후 이 영상은 ‘좋아요’ 수십만개를 기록했다. 또 ‘식당 이모가 졸업식에서 학생들을 감동시켰다’ ‘이모님 연설에 학생들이 눈물을 흘렸다’는 해시태그가 인기 검색어에 올랐다. 틀을 깨는 진솔한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와 닿았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중국기자협회보에 따르면 류씨는 2017년 옌볜대 물류지원부 급식센터에 입사해 제2학생식당에서 일했다. 사계절 내내 만나는 학생들을 보면 자식 같다는 마음이 든다고 했다. 그는 항상 미소 띤 얼굴과 쾌활한 성격으로 학생과 동료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옌볜대 급식센터는 졸업식 열흘 전 제2학생식당에서 축사를 할 사람을 뽑아달라는 학교 측 연락을 받자 류씨를 연설자로 정했다.
류씨와 급식센터 측은 졸업식 전날 만두 1만5000개를 빚었다. 길을 떠나는 이에게 만두를 빚어 먹이는 것은 중국 동북부 지방의 풍습이며 또한 학생들을 깊이 축복하고 염려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라고 중국기자협회보가 전했다.
신경보 등에 따르면 중국 대학 졸업식에 학내 노동자를 초청해 축사를 맡기는 사례가 종종 있다. 화중농업대의 2021년 졸업식에는 구내식당 노동자가 연사로 나섰으며 올해 둥난대 졸업식에서도 물류 서비스 담당 직원이 학생에게 꽃다발을 전달했다.
김초엽, 저우원 등 한국과 중국을 대표 여성 SF 작가 6명이 ‘몸’을 주제로 뭉쳤다. 신체를 소재로 놓고 각자의 색을 담은 작품을 엮은 앤솔러지를 냈다. 책 출간과 함께 올해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여한 작가들을 지난 1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만났다.
한국에서는 김초엽, 김청귤, 천선란이 중국에서는 저우원, 청징보, 왕칸위 작가가 참여했다. SF 문학 장르는 전통적으로 미국과 러시아, 유럽 등 서구 문화권에서 주도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아시아 작가들의 활동도 눈에 띈다.
과학기술 발전에 국가적 역량을 쏟아고 있는 중국은 SF 문학 육성에도 관심이 많다. 2015년 아시아 작가 최초로 류츠신이 <삼체>로 세계 3대 SF 문학상인 휴고상 수상자가 된 이후, 2016년 하오징팡, 2023년 하이야 등 세명의 휴고상 수상 작가를 배출했다. 2023년 청두에서는 세계 SF 작가들의 축제로 불리는 세계공상과학대회(월드콘)가 열리기도 했다.
중국 양대 SF 문학상인 성운상과 은하상을 모두 수상한 작가 청징보는 “중국에서 SF 문학은 황당한 것이 아니다. 중국 사람들은 ‘진짜로 우주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SF를 믿을만한 이야기로 느낀다”며 “사회적으로도 문화 역량 강화를 위해서 과학을 기반으로 하는 컨텐츠를 장려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중국 작품은 SF에 방대한 역사 이야기를 녹여내는 등 전통적인 서양 작품들과 차별화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김초엽 작가는 “중국 작가들은 작품의 긴 역사를 모두 깔고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느낌이 있다”며 “SF가 미래로 가는 작품이지만, 근저에 중국의 역사가 자리 잡고 있는듯한 느낌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김청귤 작가는 “작품에서 중국적인 색채가 느껴진다”며 “중국 작가들이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과학적인 이야기를 풀어내서 재미있다”고 말했다.
그간의 SF 작품들이 신체라는 한계를 넘어서 새로운 세계를 꿈꾸던 것과 달리 이번 책에서는 다시 몸으로 돌아간다. 작품들은 데이터의 세계로 이주한 인류(김초엽 ‘달고 미지근한 슬픔’), 인공지능(AI) 비서 역할을 하도록 개발된 ‘위’를 뇌에 이식한 사람들의 이야기(왕칸위, ‘옥 다듬기’), 각국의 언어가 섞이고 오염돼 소통의이 어려우지는 모습(저우원 ‘내일의 환영, 어제의 휘광’) 등을 그린다.
저우원 작가는 “사람들은 언어나 의지를 신체로부터 분리된 것처럼 여기지만, 언어는 몸에 기반한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청소년시절부터 류츠신의 작품들을 읽으며 SF 작가의 꿈을 키웠다는 그는 ‘왕좌의 게임’ 시리즈로 유명한 조지 R.R. 마틴이 수여하는 테란상과 중국 성운상을 수상했다.
주인공은 작가 6명이지만 숨은 조력자 덕분에 기획이 가능했다.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김이삭이다. 2023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한중 여성 작가 대담’에 참여한 김이삭 소설가가 “교류의 기회를 한 번으로 끝내긴 아쉽다”며 공동 작업을 제안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 일본과 중국의 SF 작가들은 서로 교류가 많은데, 한중 교류를 많지 않아 기회를 놓치면 안 되겠다 생각했다”고 했다.
책은 한국에서는 도서전에 맞춰 이달 초 출간됐다. 중국에서는 오는 8월 상하이문학주간에 맞춰 선보일 예정이다.
지난 27일 찾아간 전북 부안군 변산면 국립새만금간척박물관 옆 생태공원. 길게 늘어선 금계국과 샤스타데이지가 활짝 핀 꽃밭 한쪽에 나무로 된 게시판같은 게 보인다. 나무판을 자세히 보니 작은 구멍들이 숭숭 뚫려 있다. 구멍 속으로 이내 벌 한 마리가 천천히 몸을 들이민다. 이곳이 바로 야생벌을 위한 집, 부안군이 설치한 ‘비 호텔(bee hotel)’이다.
비 호텔 주변으로 공원을 찾은 방문객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방문객 중 한 명이 “이 벌들은 혼자 살아요. 집단으로 다니지 않아요”라고 설명하자, 주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30일 부안군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야생벌 붕붕이를 지켜주세요’라는 이름으로 ‘생물 다양성 보존 기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부안군의 제1호 고향사랑지정기부 사업이기도 하다. 생물 다양성을 주제로 고향사랑기부 사업을 하는 건 최초다.
프로젝트 참여 답례품으로는 부안에서 생산한 야생꿀과 생태 체험 꾸러미를 준비했다.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5개월 만에 8012만원의 기부금이 모였고, 부안군 전체 고향사랑기부금의 10%를 넘어섰다.
프로젝트는 군청 직원들이 몇 달간 교육을 받고 머리를 맞대 준비한 결과물이다. 박옥선 부안군 고향사랑협력팀장은 “단순한 기부를 넘어 참여와 연대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비 호텔 설치는 쉽지 않았다. 꿀벌과 달리 홀로 살아가는 야생 벌의 생태는 주민들에게도 낯설었다. ‘벌’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불안감을 느끼는 이들도 많았다. 결국 첫 비 호텔은 주변에 민가가 적은 새만금간척박물관 공원에 설치됐다. 시간이 지나며 인식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부안 상서면에 사는 임세준씨(55)는 “해를 끼치지 않고 식물에 수분을 준다길래, 집 근처에 설치해볼까 고민 중”이라며 웃었다.
인간이 먹는 식물의 70%는 곤충의 수분 활동 덕분에 자란다. 농약, 기후변화, 서식지 파괴로 특히 취약한 야생벌은 생태계의 중요한 연결고리다. 한국양봉협회 관계자는 “야생벌의 생존은 꿀벌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부안군은 지역 사회적기업 ‘어반비즈’, 로컬 스타트업 ‘시고르청춘’과 손잡고 야생벌 생태 교육, 캐릭터 개발, 생태 체험 꾸러미 등으로 활동을 넓히고 있다. 앞으로는 기부자 생태캠프, 밀원수(벌이 좋아하는 식물) 심기, 학교·마을·공공부지로의 비 호텔 설치도 계획 중이다. 박 팀장은 “작은 생명을 지키는 일이 지역과 지구를 살리는 일”이라며 “생태 중심의 연대가 지방소멸 시대 지역의 미래를 바꾸는 열쇠”라고 밝혔다.
새만금 비 호텔은 약 1만 마리의 야생벌을 수용할 수 있다. 부안군은 2027년까지 비 호텔을 총 3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생물 다양성 보존 기부 프로젝트’의 내년까지 목표 기부액은 3억원이다.
고향사랑기부제는 지난해부터는 특정 사업을 지정해 기부할 수 있게 되면서 각 지자체가 개성 있는 프로젝트 개발에 나서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24년 전국 고향사랑기부금은 892억원으로 전년 대비 37% 증가했다.
서울에서 참여한 기부자 박시와씨(42)는 “특산물보다 의미 있는 일에 기부하고 싶었고, 붕붕이를 통해 그걸 찾았다”며 “기부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